지고의 황제, 최악의 직장 상사

훗날 지고의 황제(optumus princeps)라는 명예로운 호칭까지 얻은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(Marcus Ulpius Traianus)는 오현제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후세에 인정받는 명군임.


요즘에야 근시안적인 내정과 지나친 군사활동으로 간혹 욕먹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최선을 다한 오현제 중 하나로 여전히 인정을 받고 있지.


하지만 당대에는 최고의 황제로, 후세에도 명군으로 인정받는 그가 사실은 최악의 직장 상사일지도 모른다는 소리가 출근 전 스마트폰으로 심심풀이로 쓰는 이 글의 소재임.





이 황제가 훗날 받는 지적 중 하나가 바로 '포도주를 스트레이트로 빨았다'는건데, 펨붕이들은 "아니 위스키나 럼도 아니고 그깟 포도주좀 스트레이트로 빠는게 어때서?"라고 생각할거임.


하지만 그 시대의 포도주는 포도주보다는 "농축 포도 알콜 시럽"이라고 부르는게 맞을 정도로 독하고 진한 물건이라 이걸 물에 타서 마시는게 국룰이었음.


그런데 이걸 아무것도 안 타고 그냥 쭉 들이켰다는거니까 요즘 시대의 감각으로 설명하자면 "포도맛 주정을 물도 안 타고 마신다"니 빼박 술꾼 맞음.





두번째는 자기 휘하 장군 및 관료들은 물론이고 젊고 잘생긴 측근들과 술자리를 가지는 걸 좋아했다는건데, 이 때문에 후세에도 소수지만 트라야누스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아니었냐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소수 있음.


하지만 서구 감성으로는 저걸 보면 동성애가 생각나겠지만, 우리 한국인들은 저거 보면 딱 이게 PTSD마냥 머리를 스쳐 지나갈거야. '회식'


실제로 트라야누스 황제는 자기를 암살할 음모를 꾸민다는 심복, 리키니우스 수라(Lucius Licinius Sura)의 집에 찾아가서 같이 술잔치를 벌이고 하룻밤 자고 오는 걸로 이 음모론을 일축하는 퍼포먼스를 보인 적도 있지.


하여간 위의 알중 술꾼 이미지와 조합하면 이리 된다.


"술 좋아하며 회식을 즐기는 직장 상사"



짤은 대 플리니우스의 외조카이자 트라야누스의 측근 소 플리니우스의 초상.


게다가 업무에서도 일 중독이 의심되는 워커홀릭이라, 지금도 비티니아 및 폰투스 총독으로 부임했던 시절의 소 플리니우스와 업무 보고를 주고받았던 기록이 있는데, 기독교도들의 사법 처리 문제에 대한 서신도 있어서 훗날 로마법과 기독교 역사 연구의 필수 요소이지만, 이 정도로 속주 총독에게 미주알고주알 업무 지시 내리는 황제가 얼마나 부하들이 모시기에 피곤했을지 다들 짐작이 갈 것임.





게다가 이 황제가 지휘했던 다키아 전쟁때의 트라야누스 기둥에 새겨진 부조나 역사 기록을 보면 이 황제는 후방에서 장군들이 승리를 가져오길 기다리는 타입 따위가 아니라 전선까지 이동해서 전략 전술을 총괄하는, 솔선수범하는 야전사령관 타입임.


이게 당연히 명장의 덕목이긴 한데 이를 모시는 장병들의 느낌은...







딱...이것...




결국 이 모든 걸 종합하면


"회식을 좋아하며 알중이 의심되는 술꾼에 부하들 일처리도 수시로 감독하는 워커홀릭, 최악의 직장상사"....





이만 최악의 직장 상사, 이 와중에도 ㅇㅎ짤을 대가리로 가리고 있는 트라야누스 황제 이야기를 마치며 일하러 가보겠다.